제목[백주현 컬럼]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유효한가?2023-02-09 10:40
작성자 Level 10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유효한가?

백주현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원주지회대표 beck8092@naver.com

 

 

지난 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발표한 ‘2019년 국가인권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차별이 심각한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13.7%매우 심각’, 55.4%다소 심각이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과반수가 넘는 69.1%가 차별이 심각하다고 답한 것이다.

 

인권침해나 차별을 많이 받는 집단을 묻는 항목에선 장애인(29.7%)을 가장 많이 꼽았으며, 이주민(16.4%), 노인(13.4%), 여성(13.2%)이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 장애인 인권 의식의 현주소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상황이 이렇자 제정된 지 10년이 넘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2, 시정명령의 요건을 완화하고 시정 기구 간의 유기적인 업무 협조를 골자로 하는 개정안이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으나 최근 장애인 차별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며 여전히 실효성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인들의 권리를 구제한다는 취지에서 지난 20074월에 제정되어 20084월부터 시행되었다.

 

당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차별을 부당한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장애인 차별금지법 시행 이전인 200111월부터 20084월까지는 장애를 사유로 한 진정이 전체 진정의 14% 수준이었던 반면, 시행 이후인 20084월부터 200912월까지는 전체 진정의 50% 수준으로 증가하였다.

 

하지만 법무부의 시정명령 조치가 사실상 기능을 하고 있지 않아 실질적인 권리 구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지난 14년간 내려진 시정명령 조치는 단 2건에 불과하다. 법무부는 지난 2010년 한 남성이 뇌병변장애 판정을 받은 뒤 구미시시설관리공단으로부터 직권면직 통보를 받은 사건에 대해 최초로 지정명령을 내렸다. 이후 2012년 수원시장에게 수원 지하상가의 장애인 이동권 제한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린 것을 마지막으로 시정명령 조치는 취해지고 있지 않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이 경험하는 차별은 장애라는 결함, 손상, 한계 때문이 아니라, 장애인이 온전하게 사회구성원으로서 참여하는 것을 가로막는 사회적 제도와 인식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 계기이기도 했다.

 

주민센터나 관공서에서 제공하는 모든 문서가 장애인의 접근성을 보장하게 되어있는데 어떤 관공서에서도 점역문건이나 음성 변환시스템을 갖추지 않았다. 또 정보 제공에 관한 차별금지 실정도 마찬가지이다. 거대 방송사들이 하나같이 일부 뉴스에서만 자막이나 수화를 제공할 뿐, 시청각장애인들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에게는 먹통일 수 밖에 없는 방송을 내보낸다.

 

따라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은 내가 요구하지 않아도 그 대상만 되면 자연스럽게 서비스나 현금을 제공받는 정책이나 시책이 아니다. 차별에 대한 본인의 권리구제 의지가 반드시 존재해야 하며 내 손발을 움직여야 내 권리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볼 수가 없는 장애인들에게 또, 듣지 못하는 장애인들에게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 구제에 관한 법률이 아무리 좋다한들 알려주지 않고, 제공해주지 않는다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은 그야말로 무용지물인 법률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법을 시행하는 사람이나 그 대상자는 바로 알고 사용되어질 수 있도록 널리 보급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또한 정확히 알고 사용할 수 있도록 확실한 교육이 필요하고, 사회복지삭들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이 과정 속에서 그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휠체어를 탈 수 있는 저상버스가 있다면 신체장애인의 결함은 더 이상 결함일 수 없다.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지원해줄 수 있는 조력자가 있다면 낮은 인지 능력은 더 이상 한계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원활하게 의사소통 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과 관계가 생기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사회에 던지며 차별을 차별이라 말하고, 권리를 구제해 달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었던 기반이 바로 법이다. 장애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제안은 지금 이 순간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부재한 한국사회에 차별의 원인과 배경이 무엇인지를 재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 한 줄기 역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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