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윤향숙칼럼]백제문화유산을 찾아서2017-12-0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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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의 혼을 찾아서  
                  -공주박물관과 무녕왕릉, 마곡사 답사-
                    윤향숙 회원 원주테마투어 운영 oaksup@hanmail.net 

26일 토요일 아침 7시, 우리 문화유산답사일행은 별들이 그려진 대형버스를 타고 어린이를  포함해서 34명이 충남 공주로 답사여행를 떠나게 되었다.

백제의 옛도읍이었던 공주는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될 때에 유림들의 반대로 대전쪽으로 고속도로가 변경되면서 도시가 발전하지못하는 측면이 있었지만, 1500여년전의 찬란한 역사유적지를 보호하는 측면에서는 더 잘 된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먼저, 공주 송산리고분을 들렀다, 실제고분은 보호차원에서 개방이 되지않았고, 현대식으로 건축한 모형관으로 들어갔다. 나이가 드신 해설사님의 해설을 들으며 우리는 백제의 웅진도읍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내부를 벽돌로 쌓은 사신도가 그려진 무령왕릉도 들어가 보고.. 8척장신의 수려하고 인자한 무령왕의 동상도 감상하고.. 모형관을 나와서 실제로 송산리고분을 둘러보았다. 일제시대에 고분들은 일본인에 의해서 도굴되었고 수많은 부장품들은 일본으로 실려갔지만, 무령왕릉은 겉모습이 너무 밋밋해서 능으로 보이지않아 일본인들에게 도굴이 되지않았다. 해방후, 하수공사를 하다가 우연히 무덤의 입구가 발견이 되어, 우리의 고고학팀에 의해서 발굴을 한 최초의 고분이 되었다. 무령왕릉은 무덤양식과 귀중한 부장품이 고스란히 간직된 채로 발굴되어 사료적으로도  매우 귀중한 고분이 되었다

다음은, 새로 단장한 공주박물관으로 가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금세공품 금송(일본 소나무)으로된 금장식이 달린 관, 아라비아에서 전해진 아주 작은 유리공예품, 무덤을 지키는 진묘수란 석수와 무령왕릉임을 새겨놓은 지석등 웅진시대의 많은 문화유품을 관람하였다.

공산성이 울려다 보이는 식당에서 돌솥밥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24km 떨어진 태화산 마곡사로 향했다. 마곡사는 백범 김구선생이 명성황후 시해에 분노하여 일본군 장교를 처단후 은거해서 승려로 머물렀던 유명한 사찰로, 경내를 가로지르는 계곡을 경계로 가람배치가 되어 경관이 매우 아름다웠다. 

강범희선생님의 우리문화유산에 대한 높은 열정이 담긴 해설로 우리 답사일행의 모습도 내내 진지했다. 팔작지붕과 맞배지붕도 구별하게 되었고, 며느리의 지혜로 만들어진 채광문제를 해결한 부연(附椽:이중 서까래)도 배웠고, 지난주에 다녀온 북경 자금성의 직선처마의 밋밋함보다 우리의 곡선미가 가미된 지붕처마가 얼마나 더 경쾌하고 아름다운지도 비교하게 되었다. 못하나 박지않고도 큰 건물을 세운 우리 조상의 뛰어난 건축술과 내진(內震)을 방지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표현하기위하여 자연석위에 그랭이질(울퉁불퉁한 막돌에 나무기둥 밑을 맞추는 것)하여 기둥을 세우는 덤벙주초술은 우리 조상의 지혜로움을 엿볼 수 있었다. 신라의 명필 김생이 쓴 현판이 달려있는 대웅보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이층으로 된 팔작지붕으로 규모도 크고 아름다웠다. 비로자나불이 모셔진 대광보전 앞에 위치한, 보물 제 799호인 5층석탑은 우리나라에 유일한 원의 라마교식 탑으로 청동상륜부가 올려져있어서 특이했다. 어린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것저것 신기해하고, 엄마들은 우리 문화 유산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설명을 해주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강선생님이 영산전(靈山殿)에서는 지은 죄를 빌어야 극락에 간다는 설명에, 한 어린이가 “엄마! 저번에 술 먹은 것 빨리 빌어야해” 하며 엄마를 부르는 모습에 우리는 폭소를 터드리기도 하였다.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과 어린이들의 순수한 모습과  함께한, 우리의 공주문화유산답사는 옛 조상의 슬기와 우수함을 온 몸으로 체험한  소중한 여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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