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복 우리단체 고문/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 본 글은 2월 7일 개최된 2021 평창평화포럼 <평화권과 평화협력> 학술행사에서 발표된 기조 발제문입니다.

평화를 위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함께하신 여러분께 뜨거운 연대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강원도의 ‘평화권’이 얼마나 중요한지 공감하기 위해 이번 세션을 준비한 이선경 강원도 인권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강원도인권위원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평창평화포럼’의 실천계획은 평화뉴딜입니다. 본 세션은 평화뉴딜의 중요한 내용인 남북평화협력을 중심으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 땅에 평화의 정착은 상호신뢰와 정의로운 사고가 작동할 때 가능합니다. 그리고 부단한 노력과 세계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진전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합니까?

지난 2018년, 한반도에는 강력한 평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핵무기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전략무기의 전개와 대규모 군사훈련, 상대방을 겨냥한 전쟁위협 발언 등 심각한 군사적 위기를 넘어, 2018년 남북,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마침내 전쟁의 종식,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비핵화를 위한 전향적인 합의들이 타결되었습니다.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없을 것이라고 밝힌 남북, 북미 정상들의 선언은 세계의 화약고를 새로운 평화의 터전으로 전환하려는 역사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유엔 헌장이 목표하고 있는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 ‘평화에 대한 위협을 방지하고 제거’하는 데서 매우 큰 걸음을 내딛은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한반도 평화는 다시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지난해 6.12 북미 싱가포르 선언 발표 이후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선언의 이행에 관한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8년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졌던 남과 북은 지금까지 아무런 대화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합니다.

2018년의 큰 진전은 북미, 남북 정상 사이의 회담과 합의에 따른 것이지만, 그 토대가 된 것은 화해, 평화, 통일을 위해 일관되게 노력해 온 민간의 활동입니다. 한국의 사회단체들은 수십 년에 걸친 권위주의 정권들의 탄압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평화, 남북화해와 통일을 위해 굴함없이 싸워왔으며, 촛불 항쟁을 통해 부패한 권력, 냉전과 대결의 세력을 심판하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였습니다.

제가 상임대표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는 촛불항쟁을 주도했던 한국의 주요 종교, 시민, 노동, 여성 단체들이 총 결집하여 2005년에 결성하였습니다. 남측위원회, 북측위원회, 해외측위원회가 함께 민족공동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으며, 이는 남과 북 해외 각계각층이 총결집하여 공동으로 결성한 유일한 조직입니다.

우리는 지난 13년 동안 일상적으로 북측, 해외 측 단체들과 소통하고, 긴밀히 교류하며 공동의 평화통일행사 등을 통해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행동을 조직해 왔습니다.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는 남과 북 해외 한반도 당사자들의 공동 입장을 대변하는 유일한 조직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한반도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어떤 의견보다 존중되어야 마땅합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주체는 우리 민족이며, 지난 수십 년간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를 조금씩 진전시켜왔던 것은 남북 당사자의 주체적 의지를 토대로 한 것이었습니다. 현재의 교착상태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진전으로 밀고 나아가는 힘 또한, 민간의 활동과 노력에 기초한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는 한반도 평화의 중대한 기로에서, 남북화해와 평화, 통일을 열망하는 한반도 당사자들의 의견을 모아 국제사회에 다음과 같은 입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6.12 북미 싱가포르 선언은 한반도 평화의 기본 청사진으로서, 제대로 이행되어야 합니다. 한쪽이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굴복시키려는 방식으로 갈등과 불신을 해소할 수 없음은 상식입니다. 정치 경제 군사 전반에 걸친 집요하고도 강력한 미국의 대북봉쇄와 압박이 수십 년의 갈등을 이어온바, 관건은 대북적대정책의 철회와 북미관계의 정상화입니다. 북미 싱가포르 선언은 상호 안보 우려 사항을 해소하고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합의입니다. 70년 이상 지속해온 북미간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새로운 관계로의 전환을 알린 싱가포르 합의에 따라 미국 정부는 한반도에 고착화된 전쟁의 구조를 청산하는 노력을 동시 병행적으로 기울여야 합니다.

둘째, 유엔과 미국 정부는 북의 핵, 미사일 시험을 이유로 추가해 온 대북 제재를 이제는 유예, 중단해야 합니다.신뢰는 상호 존중을 통해 쌓아나가야 합니다. 북의 비핵화 조치를 원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관계 정상화 노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은 “북한의 준수 여부에 비추어 필요에 따라 조치들을 강화, 수정, 중단 또는 해제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만큼, 이제 대북 제제의 중단(유예), 해제를 추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셋째, 남북 협력사업은 조건 없이 재개되어야 하며, 유엔과 미국 정부는 이를 존중해야 합니다. 오늘날 대북 제재는 남과 북의 인적, 물적 왕래와 교류, 경제적인 협력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으며 심지어 인도적 협력마저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합의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이 재개되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 철도 도로 연결사업 역시 착공기념식만 하고 진전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남과 북은 이미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철도 도로 연결 등 협력사업을 추진키로 합의한 만큼, 이를 즉각 시작해야 하며, 국제사회와 미국 정부는 대북 제재의 틀로 이를 간섭할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당사국의 노력으로서 존중하고 뒷받침해야 마땅합니다.

넷째, 북미 협상을 진전시킬 확실한 방안은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 체결에 나서는 데 있습니다. 평화협정의 체결은 북이 제기한 안전 문제를 제도적으로 담보한다는 점에서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렛대이기도 합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한반도는 항시적인 전쟁 위기 속에서 생존권과 평화권을 심각하게 위협받아 왔습니다. 매년 수십조에 달하는 아까운 세금이 전쟁비용으로 낭비되었고, 수십만의 청년들이 강제적인 군 복무로 청춘을 빼앗겨야 했습니다. 역대 권위주의 정권들은 남북 대결을 핑계로 국가보안법과 공안 기관을 앞세워 국민을 감시하고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박탈하였으며, 민주주의를 억압해 왔습니다. 항시적인 군사적 갈등과 위기로 인한 고통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반도의 전쟁구조는 비단 한반도 사람들만을 고통에 빠뜨린 것이 아닙니다. 동아시아의 패권 갈등 역시 한반도의 전쟁구조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며, 미국 대외정책의 향배 역시 그러합니다. 따라서, 한반도의 전쟁을 끝내는 것은 비단 한반도의 평화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협력을 실현하고 미국의 패권적 대외정책을 변화시키는 데에서도 결정적으로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새로운 평화와 통일의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것은 남과 북 해외 온 겨레의 숙원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를 이뤄내고야 말 것입니다. <평창평화포럼>이 한반도 평화, 동아시아의 평화, 세계의 평화를 위한 길에 큰 걸음이 되기를 여기 계신 우리 모두가 함께하기를 희망합니다. 평화운동의 동지들에게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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