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김현태 컬럼] 팬데믹과 보건의료노동자2023-02-09 10:37
작성자 Level 10

팬데믹과 보건의료노동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원주연세의료원지부

김현태 지부장 021young021@naver.com

 

 

건강과 안전을 위협받다. - 감염 위험, 그리고 불안

병원은 환자를 돌보는 공간이기에 종사자들이 감염자와 접촉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경증 환자가 많고 감염력이 높은 코로나19의 임상적 특성은 보건의료 노동자들을 감염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크다.

 

과로와 피로, 그리고 소진

감염병 유행 대비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보건의료 노동자의 과로는 당연한 결과였다. 다른 지역에서 유행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 지역, 우리 병원에는 별일이 없겠지 하는 막연한 낙관으로 철저한 대비에 나서지 않았던 곳에서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온몸으로 유행에 맞서야 했다. 준비되지 않은 채 감염자와 접촉하여 자가격리를 당하는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많아짐에 따라, 원래도 부족하던 인력은 더욱 부족해졌고, 팀워크가 해체되면서 노동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코로나19 환자를 담당했던 모든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힘들었지만, 특히 간호사에게 많은 일이 집중되면서 이들의 소진은 매우 심각했다. 교육과 훈련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병동에 새로운 인력이 충원되거나 대체될 때마다 개별적인 교육을 맡아야 하고, 교육/훈련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니 결국 그 일을 기존 간호사들이 맡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감염 노출 인원을 최소화하기 위해, 원래는 다른 인력이나 보호자들이 맡아서 하던 일들, 이를테면 환자의 식사 배식, 씻기기, 병실 기본청소, 심지어 사체 수습까지 담당해야 했다.

 

혼돈과 분열, 그리고 감정노동

코로나19 환자가 폭증하던 시기, 여러 의료기관들은 혼란에 빠졌다. 일부 환자와 보호자들의 이해 부족, 의료진에 대한 존중 없는 태도는 보건의료 노동자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간호사들은 방호복을 입고 힘들게 환자를 돌보는 와중에 환자들이 병원으로 주문한 개인 택배를 검수하여 격리 병동까지 배달하고 그와 관련한 불만까지 들어주어야 했다. 환자들은 감염 위험과 안전 때문에 병실 안에 외부 음식이나 물품을 함부로 들이면 안 된다는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병원 관리조직은 환자들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 원칙에 따라 대응하지 않음으로써 현장 노동자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불안, 분노,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 많은 환자를 적은 인력에게, 또는 위중한 환자를 준비되지 않거나 적은 수의 인력에게 담당하라고 하는 것은 노동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보호장비 제공이나 진단검사에서도 배려가 없는 데다, 심지어 제대로 된 밥 한 끼를 제공해주지 않는 데서 노동자들은 모욕을 느끼기도 했다. 병원 바깥에서는 의료인들의 노고를 존중하는 덕분에챌린지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전사영웅이라는 미사여구, ‘덕분에챌린지 모두 현실과 너무나 거리가 멀다고 이야기했다.

 

자유의 제약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업무가 과중하고 일상이 사라진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을 뿐 아니라 사생활의 자유도 제약받고 있었다. 가족으로부터 감염될까 봐 또는 가족을 감염시킬까 봐 전전긍긍하며 지냈다. 병원에서 숙소를 제공해주지 않아 할 수 없이 가족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숙소를 제공해주더라도 아이가 너무 어려 집에 가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앞서 제기된 문제들을 개선하고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보건의료 종사자들이 노동의 권리와 안전보건의 권리를 갖는노동자라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둘째, 팬데믹 상황에서 보건의료체계는 코로나19 환자만 돌보는 것이 아니며,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하면서 감염 이외에 다양한 안전보건 문제에 직면한다는 점에서 개인보호구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안전보건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신종감염병이라는 불확실성 속에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감염예방 조치 전반과 직업안전보건체계에 사전 주의 원칙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넷째, 팬데믹 대응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노동자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작업장에서 위험노출 수준을 평가하고, 이에 따라 위험 관리와 노동자 보호 수준을 선택하는 과정에 노동자들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젠더 불평등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보건의료 종사자의 다수는 여성이며, 특히 환자와 밀접한 접촉을 하는 간호사, 요양보호사, 간병인의 절대 다수는 여성이다. 이들은 코로나19 대응의 최전선인력으로서, 감염을 비롯한 각종 안전보건 상의 위협에 직면해있다. 보건의료노동자의 안전보건, 생계와 고용의 안정성 보장 방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젠더를 핵심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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