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임명숙컬럼]미노시를 다여와서2017-12-01 18:16
작성자 Level 10

          종이로 세상을 여는 미노시를 다녀와서

          임명숙  회원 im1234@paran.com

붓글씨를 쓰며 나던 먹 냄새를 풍기던 얇은 종이의 감촉이 아스라이 다가온다. 이 종이가 미술시간에 쓰던 미농지였다. 올 가을 그 미농지의 마을 미노시(美濃市)를 다녀왔다.

시월 구일 새벽안개 속에 인천을 떠나 나고야 센트리아 공항에 도착한 후 다시 한 시간 남짓 달려 미노시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의 가을과 다르지 않던 길가의 풍경과 휴게소의 한글 메뉴판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길 옆을 따라 흐르는 깨끗하고, 수량 많은 강물이 아름다운 미노시와, 미농지를 만드는 힘일 것이다. 미노시청에 도착하자 시장님을 비롯한 축제 실행위원장과 작가, 교육장, 상공회의소소장,시의회의장 등 20여명이, 우리 방문단 8명을 위한  환영식을 벌여 주었다. 

미노시는 현대화된 일본의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전통가옥과, 공방, 상점, 양조장이 있는 골목이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미농지의 역사는 1300년이 넘는다. 한창 번성할 때는 종이 뜨는 가구가 4천 세대가 넘었었는데, 근대화에 밀려 100여 가구만 남아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종이공장 사장의 아들이었던 현 이시카와 미치마사 시장님의 열정과 주민들의 합심으로 지금의 미노시를 부활시킨 것이다. 애물단지였던 종이를 관광 상품화하여, 시 전체 수입의 30% 정도를 종이와 관련된 사업에서 창출한다고 한다. 그 돈이 연간 2천 억엔 정도라고 한다. 이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여기저기서 확인 할 수 있었다. 화지축제를 통해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고, 각 나라의 종이예술가를 초청해서 무료로 작품 활동을 하게한 후, 그 작가들을 귀국시켜 미농지를 퍼뜨리게 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시내 거리에 마을 회관이 있었는데 미노지로 만든 조명등을 비롯한 화지작품들이 전시되어 판매되고 있었다. 

이튿날은 화지 테마파크를 방문하여 종이뜨기 체험을 했다. 기존의 종이 뜨는 발위에 샤워기로 물을 뿌려 종이 면에 레이스 같은 효과를 내는 체험이다. 이어 화지마을 근처에 자리 잡은 종이 장인 집과 작가의 공방도 방문하였다. 아크릴과 화지를 이용해서 작품을 제작하던 와타나베 작가가 인상 깊었다. 

미노축제가 단순히 종이만으로 이어진 축제는 아니다. 여러 행사 중 다도체험과 기모노를 입고 우다츠 거리를 걷는 일본의 전통 문화와 접목한 프로그램이 좋았다. 해가 지고 화려한 등불축제의 개막식이 열리고, 수백 개의 갖가지 화지 등과 개성으로 가득찬 작품에 불이 들어오자 거리는 탄성으로 가득 찼다. 종이 한 장으로 만든 체인, 아파트, 심지어 고양이까지 있었다. 거리에는 수많은 꿈과 함께 빛과 사람의 물결로 일렁거렸다. 축제 기간 중엔 숙박시설이 3년 후까지 예약되었다고 한다. 시내로의 자동차 진입은 금지되고, 외곽주차장에서 셔틀이나 도보로 출입해야 했다. 서점에는 공예 관련 서적들이 불티나게 팔렸고 종이가게와 등을 만드는 공방과 사케를 파는 양조장, 전통식품을 파는 가게는 사람들로 넘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축제였다. 일본도 자치단체 통폐합으로 여러 도시를 합쳐 큰 도시를 이루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때 미노시는 주민투표를 거쳐 전통을 지키는 작은 마을로 남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 작은 마을이 현재는 인구 3만의 작지만 세계 속의 명품도시로 탈바꿈한 것이다. 종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좋은 종이를 만들기 위해 환경을 가꾸다 보니, 나무와 함께 사는 미노시민이 된 것이다. 3박 4일의 짧은 방문이었지만 꿈과 희망, 예술의 열정이 어우러진 미노시의 기억은 긴 여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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