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김광운컬럼]내 생애에 북한 땅에서 백두산을 오르는 날을 기약하며2018-07-20 12:01
작성자 Level 10

내 생애에 북한 땅에서 백두산을 오르는 날을 기약하며

 

김광운 민주평통 원주시협의회 위원 htk5388@hanmail.net

 

원주시민연대와 원주 민주평통이 함께 주관 주최하여 45일간 東北3을 도는 白斗山歷史記行을 다녀왔다. 그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는 白斗山 天地 방문은 기대가 컸다. 4년 전 9월 방문 때는 凍土가 되어 입산이 금지되어 있었고 얼어붙은 長白폭포에서 아쉬움을 달랬었다. 이번에도 6월말 장마에 접어든 상황이라 애초부터 흐리고 하여 실망스런 상황이었다. 그래도 희망을 안고 정상에 오르니 구름은 완전히 걷혀있었고 天地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하반기 사업에 天地神明께서 大運을 주시려나보다.

 

백두산은 봄이다.

아직도 녹지 않은 얼음덩이들이 기슭에 남아있다. 함께 한 일행 모두 감동하며 빠르게 천지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대륙으로 연결된 北坡에서의 등정이라 다소 아쉬웠다. 입장료와 경내탑승료가 무려 430위앤 우리 돈 8만원 돈이다. 중국의 엄청난 수입이다. 북한을 통해 南坡 東坡로 등정한다면...

조속한 시일 안에 남북이 대동단결하여 한민족의 수입으로 잡아야한다. 민족의 靈山 백두산 천지를 감상하니 마음이 개운하다. 자작나무로 군락을 이룬 백두산은 좍좍 뻗은 침엽수림과 공존하고 은여우들이 많이 서식한다. 은여우는 개체 수에 비해 먹이양이 부족해 관광객들에게 접근하는 추세이다. 백두산 온천수는 83, 뜨거운 온천수가 모락모락, 온천수로 삶은 달걀은 3개 한 묶음에 10위앤 한화 1,750. 백두산천지와 장백폭포로 여정의 허기를 달래주었다.

 

1500년 전 조그만 半島國家韓半島가 한때는 滿洲벌판 광야를 말 타고 누비고 달렸던 고구려 발해의 역사가 있었고, 융성했던 한민족이 기운을 잃고 외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되찾기 위한 선열들의 희생이 있었다. 歷史의 현장을 紀行했다. 중국에서는 광개토대왕을 好太王이라 칭한다. 광개토대왕비. 아들 장수왕이 집권 3년 후 세웠다. 유리막으로 둘러쳐져 있어 사진이 선명하게 찍히지 못했다. 광개토대왕릉은 석분이 많이 훼손되어 있다. 묘벽이 부서지고 무덤입구는 통제되어 출입이 금지되었다. 백호 쌍용의 고분벽화 직접 확인도 무산!! 集安市에 있는 장수왕의 묘는 광개통대왕묘와 승용차로 불과 5분 거리에 있다. 비교적 잘 보존되어있다. 고구려 장수왕의 묘, 그는 80년간 고구려를 다스렸고 가장 안정된 정치 체계 속에서 넓은 영토를 차지했다. 아버지인 광개토대왕의 비를 세우기도 했다

 

50위엔 주고 망원경으로 북한 신의주를 살폈다.

압록강 철교에서 바라본 북·중 접경지역, 좌측이 신의주 우측이 중국단동, 경제개발을 위한 개혁개방이 절실한 북한, 건물 신축에 노동자들이 동원되어 열일 중이었고 크레인도 부산하게 움직인다. 철교는 한국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끊겼고 역사유물로 보존처리 되었고 중국 측에서 옆에 새로 철교를 건설하였다. 차량의 통행은 극히 드물었다. 경제제재에 따른 시츄에이션!!?? 평온한 북한마을. 간혹 걷는 아이와 자전거로 지나는 사람이 보이기도 했다. 45일간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기행 후의 여운은 길다. 동북3성의 사이즈는 어마 무시했지만 두만강 끝에서 압록강 끝까지 북중 접경을 지나는 마음은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남북평화 무드에 접목되어 신선하게 다가왔다.

 

내 생애에 북한 땅에서 중국 쪽을 바라보며 압록강에서 두만강까지 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날을 만들어 보자. 그것이 민주평통 자문회의 위원으로서 통일 사업을 전개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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