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김인회칼럼] 평화와 인권의 출발점 제주4.3사건2017-12-01 18:47
작성자 Level 10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의 출발점 ‘제주 4.3사건’

국가를 넘어 동아시아 차원의 과거사 정리 있어야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4월은 화려한 봄의 계절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 4월이 항상 밝고 화려한 것은 아니었다. 4월에는 4.19 혁명이 있다. 민주정부를 수립하고자 했던 학생과 시민들의 함성과 희생이 슬픔과 함께 생각난다. 그리고 너무 슬퍼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세월호 사건도 있다. 벌써 2년이 지났지만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고 사회는 바뀌지 않았다.

4월의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것 중에 또 하나가 ‘제주 4.3사건’이다. ‘제주 4.3 사건’은 과거 국가폭력의 상징이었다. 당시 제주 인구 10%인 약 3만 명이 희생되었다. 신고 된 희생자 14,028명 중 10세 이하 어린이가 814명(5.8%), 61세 이상 노인이 860명(6.1%), 여성이 2,985명(21.3%)이었다. 좌우의 대립이든, 냉전의 산물이든 어떤 이유로도 이 정도 사람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끔찍한 국가폭력과 인권침해였다.

그러나 우리는 고통스러운 ‘제주 4.3사건’의 진상을 조사했고 과거사로 정리했다. 일본 식민지배시대, 냉전시대 누적되어 온 전쟁과 식민, 내전과 국가폭력을 정리하고 ‘제주 4.3사건’은 평화와 인권의 가치로 거듭 났다. 그리고 이를 기념함으로써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새로운 가치로 평화와 인권을 제시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지금 ‘제주 4.3사건’의 평화와 인권의 정신은 더욱 절실하다. 현재 한반도는 한미합동군사훈련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다. 이 두 사건은 최근 남북한 대화의 실종, 북한의 핵실험, 개성공단 폐쇄로 이어지는 대립 속에서 진행되어 과거 어떤 때보다 위험하다. 이번 한미합동군사훈련은 사상최대이고 북한의 대응도 그 어느 때보다 직접적이다.

한반도 군사 대결은 공간적으로 수많은 시민들의 인권과 안전을 위협한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남북한 7천만 시민의 위험을 넘어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시아 수십억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다. 나아가 미중의 대결로 지구적 차원의 불안요소가 되어 버렸다. 이 때문에 한반도 군사대결은 우리가 중심이 되어 해결해야 하지만 우리 뜻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냉정한 현실이다.

한반도 군사 대결이 우리의 뜻대로만 해결될 수 없는 것은 아직도 동아시아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긴장 국면은 짧게는 남북한의 군사적 대결과 북한의 핵실험으로 촉발되었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 대결의 결과다. 더 크게 보면 청일전쟁으로 시작된 동아시아 충돌의 산물이다.

조선, 중국, 일본은 근대화과정에서 전쟁과 식민, 내전과 국가폭력을 경험했다. 한중일의 전쟁만 해도 청일전쟁, 조선독립전쟁, 중일전쟁이 있다. 이 과정에서 조선과 만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불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일제 패망 이후 한국과 중국은 내전을 겪었고 내전 이후 찾아온 것은 분단이었다. 분단으로 인해 국가는 절대권력이 되었고 이로 인해 수많은 인권침해가 발생했다. 동아시아 과거사는 정리되지 못했고 과거 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 가치는 제시되지 않았다.

전쟁과 식민과 같은 직접적인 폭력은 끝났지만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은 찾아오지 않았다. ‘제주 4.3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고 오키나와, 대만에서도 폭력은 계속되었다. 위안부 문제 역시 전쟁과 식민 시절에 자행된 잔인한 인권침해의 한 사례다. 위안부 문제는 위안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일본의 사과와 배상으로만 끝날 일도 아니다. 전쟁과 식민시절의 자행된 광범위한 폭력과 인권침해를 정리하지 않는 이상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로 재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는 여전히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지배하고 있고 동아시아 평화와 공동번영을 방해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은 과거사 정리와 맞물려 있다. 이들 가치는 청일전쟁 이후의 동아시아 대립을 청산해야 정착될 수 있다. 최근의 군사훈련과 북한의 반발도 크게 보면 동아시아의 과거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적 차원을 넘는 동아시아 차원의 과거사 정리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동아시아 국가 중 과거사 정리를 시도한 나라는 우리뿐이다. ‘제주 4.3사건’ 과거사 정리는 우리의 과거사이면서도 전쟁과 식민, 내전과 국가폭력이라는 동아시아 과거 질서에 대한 정리이기도 했다. 평화와 인권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제주 4.3사건’에서 발견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군사적 대결이 격화되는 동아시아에서 평화와 인권을 지키는 ‘제주 4.3사건’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는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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