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우석균칼럼]의료민영화를 막아야 하는 이유2017-12-01 18:33
작성자 Level 10

  의료민영화를 막아야 하는 이우
                                    우석균 /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글로벌 임상시험의 센터로 한국이 부각되고 있다. 의약품 연구개발비용 50%를 줄일 수 있고 임상시험 속도는 두배로 내며, 치료에 “순진한(naive)” 많은 대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세계 1위 제약회사인 미국 파이저(Pfizer)의 2012년 연구보고서의 내용이다.

이미 파이저는 2012년 한국의 4대 병원, 즉 삼성·아산·서울대·세브란스 병원과 임상시험 협력양해각서를 맺었다. 한국 국가임상시험사업단에 의하면 한국은 신약 임상시험에서(승인건수 기준) 세계 10위권으로 올라섰다. 규모도 1조원이 넘는다. 학생들의 선호도 1위 알바가 임상시험이라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세계의 임상시험 도시, 서울?!

서울처럼 의료수준도 높고 초대형 병원이 많은 도시가 없다. 초대형 병원에 환자 수천명이 몰려 있으니 임상시험에는 적격이다. 전세계에서 임상시험을 가장 많이 하는 도시가 서울이 됐다. “다양한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각종 질병의 임상시험 대상자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의 의료민영화 조치, 즉 병원의 규제완화 조치에는 병원의 의약품 연구개발 영리자회사 허용조치가 들 어 있다. 병원이 영리회사를 차려 투자를 받고 임상시험으로 돈벌이를 하라는 조치다. 그런데 연구윤리를 지켜야 할 병원이 가능한 빨리, 가능한 싸게 임상시험을 해야 하는 임상시험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대리해야 할 병원과, 병원 자회사와의 이해관계 충돌을 정부가 부추기는 꼴이다.

정부는 의료가 국내 산업의 ‘신성장동력’이라고 한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결국 다국적 제약회사의 값싼 임상시험 대상으로 한국 젊은이들을 내놓는 셈이다. 베트남전쟁 시기에는 젊은이들의 피로 경부고속도로를 깔았으니 임상시험 알바 일자리 창출은 그래도 좀 나아진 건가.

의료가 영리화되고 이윤 회수를 하는 자본이 유입되면 의료비는 당연히 올라간다. 정부가 강행하는 의료법 시행규칙은 병원의 부대사업을 무한정 확대하고 영리자회사를 허용하는 조치다. 2010년부터 전국경제인총연합회는 병원 부대사업을 네거티브 리스트(포괄적 허용방식: 법령에 명시된 규제항목 외에는 모두 허용하는 방식)로 바꿀 것을 요구했다. 병원경영연구원은 2009년부터 영리병원은 국민 반대가 높으니 부대사업 범위를 확대해 자회사를 갖는 방식부터 도입하라고 강조했다.

이윤지상주의가 우려되는 병원

이번 정부의 행정조치는 바로 전경련과 병원 경영자들의 요구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의약품 및 의료기기 연구개발은 물론이고, 병원 건물임대업은 포괄적 허용 방식으로 의류 및 생활용품, 식품판매업 등이 포함되었고, 여기에 수영장, 헬스클럽에 호텔까지 허용된다. 병원이 환자 치료의 공간이기보다는 의료복합기업이 되는 것이다. 당장 병원에서는 자회사의 의약품 및 의료기기를 환자에게 ‘처방’해 이용을 강요할 것이다. 그뿐인가? ‘허리에 좋은 의자’를 모 병원에서 팔고 있는 것처럼 거의 모든 생활용품을 ‘건강’을 내세워 환자에게 강매할 수 있다. ‘건강’식품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환자복이나 침대보마저 비급여 특수 이불보로 바뀔 수 있다. 지금까지는 ‘침대는 과학’이었다면 앞으로는 ‘침대는 의학’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호텔업을 이용한 1박 2일 또는 2박 3일 건강검진은 외국환자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가 건강검진의 의학적 근거는 없다. 오히려 방사선 피폭량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 멀쩡히 건강보험이 적용되던 물리치료가 자회사의 수영장이나 헬스클럽을 이용하게 하는 ‘건강관리프로그램’ 처방으로 대치된다. 당연히 환자가 부담하는 의료비가 올라간다. 미국회계감사원이 1993년에 지적한대로 1980년대 급격히 증가한 미국 비영리병원의 영리자회사는 병원의 도심 집중으로 병원 접근성을 떨어뜨렸고 과잉의료시설로 의료비를 증가시켰다. 또 가난한 환자들이 병원에 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비영리병원의 영리합작회사는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을 유사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조차 비영리병원의 영리자회사 규제조치가 시행되었다.

이에 더해 대형병원 체인의 독점 문제도 발생한다. 1980년대부터 가속화된 미국의 의료민영화는 레이건·부시 행정부의 복지재정 삭감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영리병원과 영리자회사를 가진 비영리병원이 늘어났고 결국 보험-병원 복합기업(HMO)이 대자본에 의해 장악되어 전국의 병원들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미국의 끔찍한 의료현실이다.

건강과 생명은 상품이 될 수 없다

당장 정부는 중소병원의 영리자회사 허용조치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서울대병원의 헬스커넥트와 같은 대형병원의 영리자회사들의 사후적 합법화다. 의료법은 대학병원에 준용되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사립병원이 90%인 나라, 또 의료보장률이 50% 조금 넘는 나라에서는 자본의 병원장악, 즉 의료민영화가 미국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일어날 수 있다. 

의료비만 올라가는 게 아니다. 건강과 생명이 상품이 된다. 미국에서는 생명보험에 든 사람들이 에이즈와 같은 중병에 걸리면 그 의료비를 대려고 자신의 생명보험을 생명청산보험회사에 파는 것이 합법이다. 1995년 에이즈 치료의 길이 열리자 이 ‘사망보험’의 파생상품에 투자했던 은행들은 어떻게 했을까? 에이즈 치료의 복지혜택을 주는 것에 반대하는 주에서 각종 법안에 로비를 전개했다. 환자들의 생명보험에 투자한 이들은 사람들이 일찍 죽어야 많은 보험금을 받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매일매일 기다리며 자신의 투자회수금을 기다리는 사회. 의료가 민영화된 미국의 민낯이다. 의료가 상품이 되고 병원에 자본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하는 이유다. 
  
2014.7.30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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