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박형운칼럼]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우려2017-12-01 18:43
작성자 Level 10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우려

박형운 원주중학교 교사 pavalma@hanmail.net


  “역사에 관한 일은 국민과 역사학자의 판단이다. 어떤 경우든 역사를 정권이 재단해선 안 된다. 정권의 입맛에 맞게 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 2005년 박근혜 총재 신년 연설 중 - 

  그러나 정부는 지난 10월 12일 많은 국민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2017학년도부터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기로 공식 발표하고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안)’을 행정 예고를 하였다. 이에 대해 역사 교사 2,255명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실명으로 밝혔다. 이후 역사학계 연구자 및 교수, 예비교사, 국내·외 시민단체, 학부모는 물론 심지어 중·고등학교 학생들까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또한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 기준을 만들고 있는 학자와 현직 교사들도 국정화에 반대하며 집필 및 심의, 현장 적합성 검토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도 정부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강행하고 있다. 그 명분으로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가 너무 좌편향되어 있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면서 현재 교과서를 종북교과서로 몰아 부치고 있다. 또한 역사학계 90%가 좌파 세력이라고 강변을 하며 현 정부와 입장이 다르면 모두 좌편향이라고 한다.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는 나라는 몽골, 베트남, 북한,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 몇몇 국가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어느 국가도 국정교과서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을 자처하면서 왜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려 하는지 모르겠다. 겉으로는 통합과 소통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세계적으로 구시대의 유물이 된 이념 논쟁을 불러일으켜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 묻고 싶다. 

  정부 여당의 대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존의 교과서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승리한 역사라고 서술하여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역사 인식을 학습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 침략기나 일제 강점기 그리고 해방 이후 기회주의가 판을 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것을 극복하고 정의가 승리하는 긍정의 역사를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어찌 패배의 역사를 가르친다고 할 수 있는가? 

  국정화 교과서 편찬과 관련하여 가장 우려되는 것은 과거 유신정권 시기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하듯이 정부의 일방적 가치를 주입하고 그것만이 올바른 관점이라는 편협된 사고를 학생들에게 주입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과거로의 회기.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2013년에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동’이 자꾸만 그려진다. 당시 뉴라이트 학자로 대표되는 사람들이 편찬한 교학사 교과서는 수많은 오류로 부실함이 드러났고,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위험한 역사인식으로 검정에 합격하기 어려운 교과서였다. 그래서 교학사 교과서는 학교 현장에서 철저히 외면 받았다.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주장은 처음에는 교학사 교과서 채택에 관여했다 실패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었으나, 최근에는 집권 여당의 정치인들과 일부 보수 언론이 가세하여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는 학교현장에서 철저히 외면 받은 특정한 역사 인식을 국가의 힘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정치적 주장으로 읽혀 더욱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를 꼼꼼히 읽고 나면 이번 사태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라는 걸 알 수 있다. 기존에 배우고 들은 역사적 사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뉴라이트는 조선 말 지도자의 무능으로 식민지화는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일제 지배는 근대화에 기여했고 해방 후 이승만의 건국과 박정희의 경제발전을 거쳐 지금의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가져왔다고 본다. 친일이나 독재는 그 과정에서 일어난 불가피한 일 정도로 인식한다.  이런 관점에서 대한제국의 자주적 개혁 노력이나 동학농민운동, 의병운동을 폄하하거나 부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교학사 교과서는 일제강점기의 사회ㆍ경제적 변화를 다룬 단원을 관통하는 단어는 ‘성장’ ‘발전’ ‘증가’다. 식민통치를 근대화의 단계로만 파악하지 일제가 왜 그런 정책을 실시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빼놓았다. 친일파를 다룬 대목에서는 최남선에 대해 ‘공과 과를 함께 논한다면 어느 쪽이 클까? 주요 공적에 대해 포상을 한다면 어떤 상을 수여하면 적절할까?”라고 물었다. 해방 후로 와서는 ‘이승만 정권의 시련, 성취와 함정’이라는 제목에서 보듯 많은 업적을 이뤘으나 함정에 빠져 독재를 한 것처럼 평가한다. 유신체제를 다룬 단원의 제목이 ‘10월 유신과 그 덫’으로 돼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정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결국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조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했다는 표현, 일제의 쌀 ‘수탈’을 ‘수출’로(식민지 근대화론), 의병 ‘학살’을 ‘토벌’로 표현하며 친일파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독립운동의 역사는 축소시키는 뉴라이트 시각의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역사교과서 편찬을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에는 음과 양이 항상 존재한다. 긍정의 역사는 과를 덮는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과를 정확히 평가해서 과를 불러온 세력에 대해 단죄하는데서 나온다. 친일 독재에 대한 사실을 합리화하거나 덮을 것이 아니라 반성하고 사죄하는 역사가 통합과 발전의 역사이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국정교과서로 우리 아이들이 역사의 주체로 우뚝 서는 것을 방해하거나 잘못된 역사의식을 가진 아이들로 자라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역사 교과서의 다양성 유지는 필수적이다.

미래의 주인이 될 우리 학생들은 다양한 개성, 개방적인 사고, 창의적인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 학교 교육의 가치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더불어 살아가며 사회문제의 해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시민으로 인간을 기르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역사교육은 인간의 기본적 가치를 존중하며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