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송금희칼럼]시간의 멈춤-귀향2017-12-01 18:47
작성자 Level 10

시간의 멈춤… 귀향(鬼響)

송금희 원주연세의료원 노동조합 지부

시간의 멈춤 - 귀향

송금희 원주연세의료원 노동조합 지부장/ 원주시민연대운영위원/평화의소녀상 시민모임 상임대표  wonjutoday@hanmail.net

2016년 2월 26일 저녁, 귀향과 마주한 그 시간을 나는 어쩌면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1943년,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기 2년 전. 어느 작은 시골마을 세 소녀의 놀이로 영화는 시작되었다.

14세 소녀 정민이는 지금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 우리 딸과 동갑내기이다. 한창 사춘기로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북한도 두려워한다는 '중2병'을 앓고 있는 철부지 14세 소녀.

정민이는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수많은 언니, 동생들과 함께 일본군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간다. 소녀들을 맞이한 건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는 소위 그들이 부르는 군부대 안의 '위안소'.

그 어린 소녀들에게 그 곳은 상상조차하기 힘든 지옥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차라리 보지 말 걸 그랬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고통스런 장면들과 함께 우리 아이의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나는 잠시 후회했다. 상상만으로도 이 나라가 너무 치욕스럽고 끔찍하니까.

영화 '귀향'은 조정래 감독이 지난 2002년 위안부 피해자 후원 시설인 '나눔의 집'을 방문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토대로 전 국민의 후원을 받아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만들었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각지에서 7만5천270명의 시민이 후원하였음을 마지막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제작과 개봉을 위해 관심 갖고 후원하는 동안 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감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고 행동한다'는 말이 사실일 게다.

지난 1991년 8월 14일,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 이후 25년이 흘렀고, 작년 8월 15일 원주에도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지만 작년 12월 28일 정부의 한일 합의는 우리를 한 번 더 절망에 빠트렸다.

지난 1년, 원주시민들의 자발적인 힘으로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고 매월 둘째 주 수요일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촉구하는 집회 속에 우리는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12.28 합의 당시 일본 외무상의 사과문 대독은 할머니들을 포함한 전 국민을 더욱 분노케 했고 위안부 문제가 무엇인지, 피해자들의 요구 또한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함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지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그때는 우리가 힘이 없어서…." 라고 있는 힘을 다해 우리에게 외쳤던 김복동 할머님의 목소리가 다시 떠오른다. 광복 70년이 넘어선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힘이 없어 당사자도 모르는 합의를 '최종적, 불가역적'이라는 말로 받아들이라 하는가!

"언니야, 집에 가자. 이제 집에 가자." 라는 영화 속 14세 소녀의 목소리가 나는 아직도 서글프다. 많이 서글프다. 죽어서 조차 올 수 없는 이 나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넋이나마 불러 그리운 고향과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그 서러운 길에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집으로 들어와 딸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14세 소녀가 이야기한다.

"엄마, 나랑 영화 보러 가요." 
"그래. 좋지, 보고 싶은 영화 있어?" 
"귀향…이요."
나는 잠시 숨을 고르다 이야기했다. "너무 슬픈데, 엄마는 보고 싶지 않아…."


*본 글은 원주투데이 3월7일자에 개제된 내용입니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