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정미영컬럼]백두산 천지가 열리듯 평화와 통일도 순탄하라!2018-07-20 12:00
작성자 Level 10

백두산 천지가 열리듯 평화와 통일도 순탄하라!

 

정미영 회원, 통일강사 myejeong@hanmail.net

 

백두산에 올랐다. 천지(天池-The Heavenly Lake)가 찬란하게 펼쳐졌다. 감동과 환희가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하늘과 맞닿은 호수는 잔잔하고 평화로웠다. 나는 여기 백두산 정상에서 천지를 내려다보며 서있다. 그러나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은 우리 땅 백두산이 아닌 중국 땅 장백산. 다음에는 한반도 육로를 통해 우리 땅 여기 백두산에 다시 오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나와 동료들은 지난 629일부터 73일까지 45일 동안 백두산과 항일투쟁지를 탐방했다. 탐방지를 두루 다니며 우리 선조들이 목숨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염원, 곧 우리민족의 자유와 평화, 번영과 통일을 가슴 깊이 함께 느꼈다.

두만강과 압록강 강가를 거닐 때 북쪽땅은 가까웠다. 마치 강남의 올림픽대로를 타고 공항을 향해갈 때 오른쪽 차창가로 강북의 아파트들이 보이듯 멀지 않은 거리였다. 그 지척 강변 둑에서 누런 황소가 풀을 뜯고 있었고 주민 몇몇이 콩인지 뭔지 모르는 작물을 손보고 있었다. 평화로웠다. 그냥 원주근처 남한강변 어느 농촌마을에서 볼 수 있는 풍경, 그거였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분단상태가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이 평화는 그저 나의 마음일 뿐, 바람일 뿐 누런 황소에게 풀을 뜯기고 농사를 짓고 있는 그이와 나, 같은 민족이지만 다가설 수 없는 분단 아닌가. 압록강가에서 낚시를 하는 그이와 나, 역시안녕하세요말 한 마디 건넬 수 없지 않은가. 그곳에서 나는 가슴 속으로 우리 남과 북은 평화를 찾아야 한다고 소리쳤다.

나와 동료들은 중국에 도착한 첫날부터 돌아오는 마지막 날까지 항일투쟁지와 항일투쟁을 하며 목숨을 바친 선조들의 발자취를 찾아갔다. 공항에서 내려 처음 찾은 곳이 8녀투강지. 여덟 명의 청년여성이 일본군을 목단강으로 유인해 함께 투신해서 일본군으로부터 동지들을 구한 것을 기념해 기념비를 세웠고 기념관을 지어 기록을 전시하고 있었다. 8명 가운데 2명이 조선의 여자였다. 이곳을 시작으로 연길의 연변대학을 탐방하고 조선족혁명기념관을 지나 용정에 있는 윤동주 생가와 명동학교를 찾았다. 윤동주와 명동학교의 생각은 바로 교육이다. 나라와 민족의 독립과 자유는 교육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에 깊은 공감을 느끼며 평화통일 강사로서의 책임감 또한 막중하게 느꼈다. 길림성을 지나면서 광개토대왕릉비와 광개토대왕릉 장수왕릉, 장수왕능 옆 작은 고인돌무덤을 함께 보면서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너무 외면하고 있었음을 깊이 반성하는 탐방지가 되었다. 광개토대왕릉비와 이 지역은 유네스코에 등재되었으나 중국 이름으로 올라갔다. 아픈 가슴을 뒤로하고 돌아섰다. 마지막 날 찾은 여순감옥. 이곳에서 나는 일본의 잔인함을 다시 한 번 느끼며 몸서리를 쳤다. 동시에 처절하게 생을 마감해야했던 항일투쟁열사들의 피와 눈물을 맞닥뜨렸다. 특히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곳 앞에 섰을 때 그의 어머니가 직접 지어 보내주신 흰 수의를 입고 사형집행을 받는 안중근 의사의 의연한 모습에 하늘과 같은 숭고함을 느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이번 백두평화기행을 하는 동안 내내 나는 우리의 다음세대를 생각했다. 역사는 선조들과 나 그리고 다음세대인 아이들에게 또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까지 쉼 없이 이어지는 어떤 끈이다. 이 끈을 외면하고는 자신의 정체성을 세울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다음세대인 우리 아이들이 꼭 한 번은 선조들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탐방을 하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이번 기행후기를 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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