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김미숙컬럼]사무국장으로 복귀하여, 백두산을 다녀왔습니다.2018-07-20 11:59
작성자 Level 10

 사무국장으로 복귀하여, 백두산을 다녀왔습니다.

 

김미숙 사무국장 mi-so-go@hanamail.net

 

2년을 쉬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2년 전 교통사고로 무너진 허리 탓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푹 쉬었습니다 교정치료를 새로이 시작하고 조금씩 걷는 게 편안해 질 즈음 평창 동계올림픽에 남북공동응원단 사업을 좀 도와 달라는 대표님의 말에 치료중인 허리를 부여잡고 사무실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감사의 의미로 진행된 북측응원단의 원주시민을 위한 공연은 3~4시간을 마다않고 서서 기다리신 어르신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를 통해 영하20도의 칼바람도 뜨거운 열정으로 맞받아친 남북공동응원단의 응원 구호가 무색하게 똑같네! 우리랑, 얼굴도 마음도 노래도 다 똑같아를 되 뇌이시는 어르신들의 촉촉한 눈가는 연령을 구분하지 않고 현장의 모든 이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곧 만나자. 통일이 되면 다시 만나자며 버스를 타기 위해 떠나는 북한 응원단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어 주신 어르신들과 환호해 주시는 원주시민들은 보면서 그 뿌듯함은 평창의 매서운 칼바람을 상쇄하고도 남았습니다.

 다시 평창 패널림픽 남북공동응원이 끝나고 서류 정산작업을 진행하면서 2018년의 봄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니 어느사이 저는 다시 시민연대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원래 자리로 돌아온 거라고 다들 말씀하시지만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2년이란 시간은 흘렀지만 사무실은 그대로 있고 여전히 업무는 책상위에 산적해 있고 채 바퀴 굴러가듯 매년 이어지는 행사와 올해 새로이 시작되는 행사는 나이를 먹고 약해지는 것이 나만 인 듯, 시민연대는 늙지도 않고 더 굳건하고 활기차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6월말에는 회원들과 백두산역사평화기행을 다녀왔습니다.

10여 년 전에 한지로 작업한 광개토대왕비가 진짜 광개토대왕비와 얼마나 닮았을까라는 의문을 풀기위해 기행에 참여했습니다. 광개토대왕비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자료 수집과 책을 통해 재현된 광개토대왕비는 어느 날 말리기 위해 아파트 주차장에 내 놓았더니 지나가던 주 민이 광개토대왕비를 만드셨네요라고 알은 채 해 주신 말은 몇 달을 애쓰고 고생한 것을 잊게 만들었었죠, 그래서 나에게는 다른 이들보다 광개토대왕비가 더욱 특별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찾아본 광개토대왕비는 설레임과 감격보다는 중국의 동북공정의 희생양으로 변한 우리의 역사를 직면하게 만들었습니다. 유리막으로 쌓여 있고 중국공안이 지키고 있는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의 우렁찬 기백을 보여주기 보다는 중국에 인질로 억류되어 있는 듯 했습니다. 문화재보호 명목으로 설치된 유리막과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는 타국의 문화도 그 가치를 인정하고 아끼는 중국의 대륙적인 마인드로 칭송해야 하겠지만 중국 곳곳에 잘 정돈된 박물관에서의 우리 고구려 문화와 발해 문화에 대한 중국공안의 날카로운 신경전은 그들의 속내를 짐작하게 하였습니다.

우리의 항일역사를 박물관에 우리보다 더 상세하게 조선족이라는 표기와 함께 기록하고 지역곳곳에 산재된 열사비에 한국인임을 주저 없이 기록해 놓은 중국당국의 처사를 타국 역사도 존중한다는 순수한 맘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담백하게 중국 인근의 소수민족으로 치부해 놓은 그들의 속내를 곱씹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번 백두산 역사평화기행은 평소 자랑스러워했던 고구려의 역사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 개인적으로 감동의 시간이 되었지만 우리의 역사가 서서히 퇴색되어 타국의 역사화가 되고 있는 점을 확인한 시간이 되어 입맛이 씁쓸해 졌습니다.

회원 분들에게도 우리의 역사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도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역사에 스스로가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진다면 그 누가 우리의 역사를 가지고 장난을 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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